태그 : 소설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권여선, 「사랑을 믿다」

 인생을 살다 보면 까마득하여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 의외로 손쉽게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순간에 들렸던 것뿐이다. 더 기막힌 건 앞으로 살다 보면 그런 일이 또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산이나 상비약을 챙기듯 미리 대비할 수도 없다. 사랑을 믿는다는 해괴한 경험...

최윤, 「하나코는 없다」

 그녀의 모든 것이 다 예전과 같아도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목소리도 아니고 어조가 덜 친절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정말 반가운 기색으로 그에게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는 갑자기 힘이 조금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보러 기차를 타고, 그녀가 말해준 이름의 거리를 찾아 헤매고,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그녀의 책상 옆에...

테드 창,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에서

367쪽. 타메라 라이언스오늘 재미있는 강의를 하나 들었어요. 사상사(思想史) 시간에 앤턴이라는 이름의 조교가 있는데, 옛날부터 미남 미녀를 묘사하는 데 써온 단어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마법에 관련된 것인가를 얘기해 주더군요. 이를테면 'charm(매력)'이라는 단어는 원래는 마법의 주문을 의미했고, 'glamour(성적 매력)'도 마찬가지였...

테드 창, <지옥은 신의 부재>,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에서

305쪽. 제니스는 자신이 은총을 입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그 나름의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중과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쓸 필요가 없었던 자질을 불가피하게 끌어내 사용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청중 속에서 다리가 기형인 사내가 일어서더...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에서

116쪽. 3a일곱 살의 어린아이였을 당시 친척 집을 탐험하던 레네는 매끄러운 대리석 타일로 뒤덮인 마룻바닥에 숨겨져 있던 완벽한 정사각형에 매료당했다. 한 장의 타일, 2열 곱하기 2장, 3열 곱하기 3장, 4열 곱하기4장. 어느 타일도 정사각형 속에 딱 맞아들어 갔다. 당연하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뿐 아니라 정사각형에 든...

테드 창, <바빌론의 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에서

27쪽. "해가 막 넘어가려고 할 때, 탑 엽쯜 내려다보게나."힐라룸은 아래쪽을 흘끗 보고는 재빨리 지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가 지는 광경이 여기선 어떤 식으로 달라지는데?""이걸 머리에 그려 봐. 해가 서쪽 산마루 너머로 넘어갈 때면 시나르 평원은 어두워져. 하지만 산마루보다 더 높은 이곳에서 보면 여전히 해를볼 수 있어. 탑에 있는 우리가 밤을...

토마스 만 <마의 산>

죽음에는 경건하고 명상적이며 슬프도록 아름다운, 즉 종교적인 속성이 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이와는 반대되는 속성, 즉 지극히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속성이 있다. 이는 아름답지도 명상적이지도 않고 경건하지도 않으며 단지 슬프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음의 엄숙하고 종교적인 속성은 시신을 호화스럽게 안치해 둔 것에서, 꽃의 화려함에서, 알다시피...

천정완, 「팽—부풀어 오르다」

 누가 내게 형과 형의 체조를 동시에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고요했다고 말하고 싶다. 형은 산을 옮기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치열하게 체조를 했다. 내 생각엔, 그는 체조를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형에게 직접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형이 죽었다. 나는 신축한 지 세 달도 되지 않은 빌딩의 누수를 탐지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

백수린,「밤의 수족관」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정말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친척집 전화번호는 물론, 친척들의 주소와 생년월일까지도 모두 한 번 들으면 결코 잊는 법이 없었지. 그래서 엄마는 나를 걸어다니는 수첩으로 활용하기도 했어. 커서도 기억력에 관해서라면 자신이 있었어. 나는 친구들이 했던 사소한 말들이나 행동들까지 모두 기억해내는 사람이었어. ...

이상, 「날개」/『이상전집 2』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버리고 싶었다.(…중략…)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