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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3—부엉이의 숲」

그것이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어쩌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지만, 나는 지금의 삶이 끝난 후 내가 유령으로서 또하나의 삶을 사는 것이 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이 유령은 삶의 그 무엇에도 관여하지 않고, 다만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한낮임에도 어둑한 낙엽송숲에 들어오게 된 어떤 사람을 한낮의 어두운 낙엽송숲이 전해주는 것과는 다른 어떤 ...

정영문,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2—동굴 생활자」

257쪽) 고양이에겐 내가 오기 전에 그것을 기르던 주인이 부르던 다른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내가 새로운 이름 램지로 그것을 부르기까지 고양이는 한동안 이름의 공백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떤 램지는 램지로 불리기를 마다했다. 내가 램지라고 부를 때면 ...

정영문, 「유원지에서」

 나는 의외로 차분한 상태였다. 이미 파헤쳐질 대로 파헤쳐진 생각을 파헤치며 또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그렇게 혼자일 때면 나 자신이 완전한 존재로, 다시 말해 완전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와 함게 있을 경우에는 나 자신이 불완전하게 누구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지 ...

정영문, 「닭과 함께 하는 어떤」

 146쪽) 그녀는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마주친 많은 닭들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그 여행을 하면서 그녀가 찍은 것은 오직 닭들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닭들을 찍은 사진 속에는 닭만 있거나 사람이나 다른 다른 동물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진은 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래서 닭이 중심인물이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닭들을 찍을 ...

정영문, 「추억의 한 방식」

 108쪽)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이, 열 마리도 넘는 모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낼 때면 모기를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이자 거의 유일한 일과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그에 따라 모기가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있다가도 모기를 잡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다. 저녁...

에이단 체임버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43쪽) 나는 욕조를 보면 언제나 관이 떠오른다. 고먼가의 거대한 욕조는 고대의 석관을 떠오르게 했다. 무덤처럼 거대한 그 욕조는 기념비 같은 엄숙함을 지니고 있었고 각종 부속물이 달려 있었다. (…중략…)생각해 보니 욕실 전체가 피라미드의 묘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개인 위생의 성전에서 내 착란한 정신을 적시며 앉아 있다 보니 죽음에 대해 탐구할 ...

정영문, 「목신의 어떤 오후」

 어쨌든 우리는 일생이 하루로 집약되는 것 같은 하루를, 무척 나른하고 몽롱하고 길게 느껴지는 일생 같은 하루를 보내기를 원했고, 그 결과 소풍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 하지만 출발이 늦었고, 호수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오후도 중반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오는 동안에는 어떤 기대에 차 다소 들떠 있었지만, 호수에 도착해 우리 앞으로 펼쳐진 고요...

정영문, 「여행의 즐거움」

 그는 그녀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그녀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빼고는 괜찮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그녀에게 어떤 친밀감을 느낀 것은 그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강도를 혹은 그냥 조금 이상한 어떤 남자를 만나 순간적으로 겁에 질렸고, 그래서 아직도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정영문, 「브라운 부인」

 그녀는 집에 강도가 침입한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남편과 이혼을 했고, 이곳 캐나다로 이주해왔으며 그 사내아이와 여자앙니느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사내아이는 돈을 요구하긴 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남편이 그에게 뭔가를 요구할 것을 요구한 후에야 요구한 것이었다. 사내아이가 요구한 것은 마실 것과 치질약과 네 곡의 연주뿐이었다. 브...

조현, 「그 순간 너와 나는」

 아이를 잃어버린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고수부지에서 거래처와 중요한 사업상의 전화를 하느라 잠깐 손을 놓았는데 그걸로 끝이었다. 전화를 마치고 난 후 딸애를 찾아보았지만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 세월 동안 수없이 생각했다. 전화하는 동안 계속 손을 잡고 있었어야 했다거나, 혹은 아이의 옷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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