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 <벨자> 책 기록


106쪽/
 할 줄 모르는 일의 목록이 점점 길어졌다.
 춤에 관한 한 몸치였다. 리듬을 타지 못했다. 균형 감각이 없어서 체육 시간에 양손을 뻗고 멀에 책을 올리고 좁은 판자 위를 걸을 때면 늘 떨어졌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승마와 스키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서 못 배웠다. 독일어로 말할 줄도, 한자를 쓸 줄도 몰랐다. 히브리어도 읽지 못했다. 내 앞에 있는 유엔 사람들이 대표하는 국가의 위치를 지도에서 짚어내지도 못했고. 
 평생 처음으로 유엔 건물의 방음이 되는 심장부에서, 테니스를 치는 동시통역사 콘스탄틴과 관용어구를 많이 아는 러시아 여자 사이에 앉아 있으니 내가 끔찍하게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늘 부족했는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내 특기는 장학금 타기와 상 타기였는데 이제 그것도 끝나가고 있었다.
 
 117쪽/ 깊은 우물 바닥에 있어 손이 닿지 않는 조약돌 보듯 콘스탄틴을 쳐다보는데, 그의 눈꺼풀이 떨리더니 그가 날 물끄러미 보았다. 그의 눈에는 사랑이 넘쳤다. 뿌연 부드러움 위로 감각의 빗장이 찰칵 소리를 내는 광경을 난 멍하니 보았다. 넓은 동공이 가죽처럼 반들거리고 깊이를 알 수 없었다.


119쪽/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고, 잿빛 하늘은 눈을 뿌릴 기세였다. 헛배가 부르고 멍하고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면 늘 그랬다. 꼭 소나무 가지와 촛불, 금색과 은색 리본을 맨 선물들, 자작나무 모닥불, 칠면조 구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캐럴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129쪽/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싶은 게 신경증이라면 난 끔찍한 신경증에 걸렸어. 난 죽을 때까지 완전히 다른 것들 사이를 날아다닐 거야."
버디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같이 날아다니게 해줘."


154쪽/ 냉방장치가 된 객차에서 역 플랫폼에 내려서니 엄마 같은 교외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잔디밭 스프링클러와 왜건, 테니스 라켓, 개, 아기 냄새가 났다.
 여름의 느긋함이 모든 것 위로 위안의 손길을 뻗었다. 죽음처럼.


196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수백만 가지 형체와 그늘진 막다른 길들, 서랍장과 옷장, 옷가방 속에는 그늘이 있었다. 지구의 밤 쪽으로 끝없는 그늘이 뻗어 있었다.
 


실비아 플라스, <벨자>, 공경희 옮김, 마음산책


덧글

  • 2015/06/24 16: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25 15: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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