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볼라뇨, <2666>-2부 책 기록


329쪽/ 고독 속에서 롤라는 아말피타노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죽였다. 편지에서 그녀는 산세바스티안과 그녀가 매일 찾아가던 정신 병원 주변에서 자기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말했다. 그녀는 쇠창살 울타리를 쳐다보면서 시인과 텔레파시로 접촉한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근처 숲에서 공터를 찾아 책을 읽거나 아니면 조그만 꽃이나 풀잎을 주워 그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쇠창살 사이로 떨어뜨리거나 혹은 하숙집으로 가져갔다. 언젠가 한번은 도로에서 그녀를 태워준 운전사가 몬드라곤 공동묘지를 보고 싶으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동차를 공동묘지 밖 아카시아나무 아래 세우고서 한참 동안 무덤 사이를 거닐었다. 묘비 대부분에 바스크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다가 운전사의 어머니가 묻힌 곳의 벽감에 도착했다. 운전사는 그곳에서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롤라는 웃었고, 공동묘지의 큰길을 걸어오는 방문객에게 그대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상기시켰다. 운전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제기랄, 당신 말이 맞아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좀 더 외진 장소를 찾았고, 그 행위는 15분도 지속되지 않았다. 운전사의 성은 라라사발이었다. 그는 이름이 있었지만, 말해 주려 하지 않았다. 그냥 라라사발이에요. 내 친구들이 날 그렇게 불러요. 그가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공동묘지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게 아니라고 롤라에게 말했다. 이미 그전에 비공식적인 애인, 디스코텍에서 알게 된 어느 여자를 비롯해서 산세바스티안의 창녀 둘과 그곳에서 성관게를 한 경험이 있었다. 떠날 무렵이 되자 그는 그녀에게 돈을 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라라사발은 그녀에게 정신 병원에 친척이 있느냐고 물었고, 롤라는 자기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라라사발은 한 번도 시를 읽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롤라가 왜 시인에게 그토록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나도 당신이 공동묘지에서 섹스를 하려는 광기를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것으로 당신을 판단하지는 않아요. 롤라는 말했다. 맞아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광기가 있지요. 라라사발은 인정했다. 정신 병원 문 앞에 도착하여 롤라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라라사발은 살그머니 그녀의 주머니에 5천 페세타짜리 지폐를 넣어 주었다. 롤라는 그걸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무 아래 내려 그곳에 혼자 남았다. 미친 사람들이 수용된 집의 철 대문 앞이었다. 바로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시인이 사는 곳이었다.

337쪽/ 그는 뒷골목 조그만 장터에서 그녀에게 치마 하나를 사 주었고, 산세바스티안 중심가 가게에서 브랜드 있는 청바지 몇 벌을 사주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의 어머니를 비롯해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 않는 자기 형제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어떤 것도 롤라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아니, 그녀에게 감동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기대하던 의미의 감동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그 시절은 오랫동안 공중을 비행한 뒤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 매일 몬드라곤에 가지 않고, 사흘에 한 번씩만 갔다. 그리고 시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품지 않았고 그저 어떤 신호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쇠창살 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그 표시를 결코 알아볼 수 없거나 아니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모든 게 중요성을 상실했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임을 이미 알았다. 때로 전화로 알리지도 않고 어떤 메모도 남기지 않은 채, 그녀는 라라사발의 집에서 잠을 자지 않았고, 그러면 라라사발은 자동차를 타고 공동묘지와 정신 병원, 그리고 그녀가 머물던 하숙집이나 산세바스티안의 거지들과 떠돌이들이 모이는 장소로 가서 그녀를 찾았다. 한번은 그녀를 기차역 대합실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오로지 두 종류의 반대되는 사람들, 즉 너무나 바빠 시간이 없는 사람들과 너무나 시간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걸어다니는 시간에 라콘차 해변의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하기도 했다. 


342쪽/ 마지막 편지를 보내고 2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아말피타노와 딸 로사를 버린 지 7년째 되었을 때, 롤라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3주 동안 그녀는 옛주소들을 기억해 내고는 그곳에서 남편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몇몇 사람은 문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녀가 누구인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거나 아니면 이미 그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문간에서만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를 ㅁ디지 못했거나 혹은 단순히 롤라가 주소를 잘못 찾아갔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은 그녀를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커피나 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결코 마시지 않았다. 딸과 아말피타노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을 찾는 작업은 맥 빠지는 일이었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기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말했다. 밤이 되면 그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빽빽이 들어차는 조그만 쪽방들이 줄지어 있는 람블라스 근처 하숙집에서 잠을 잤다. 그는 도시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지만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걸어다닌 후 저녁이 되면 그녀는 교회 계단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거나, 교회에 들거가고 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대부분은 관광객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에 관해서나 마녀 혹은 건강한 생활에 관해 프랑스어로 쓴 책을 읽었다. 가끔씩 그녀는 자기를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딸 엘렉트라라고, 농부와 대중 틈에 섞여 사는 살인자라고, 심지어 FBI의 전문 요원들이나 그녀의 손에 동전을 던져 주는 자비로운 사람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암살자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때는 메돈과 스트로피오스의 어머니, 그러니까 저 멀리서 파란 하늘이 지중해의 하얀 팔 안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자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창문에서 지켜보는 행복한 어머니처럼 느꼈다. 그녀는 필라데스와 오레스테스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 두 이름 속에 숨많은 남자의 얼굴이 들어 있었지만 정작 지금 그녀가 찾는 남자인 아말피타노의 얼굴은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남편의 옛 제자를 만났고, 그는 마치 대학생 시절에 그녀를 사랑한 사람처럼 즉시 그녀를 알아보았다. 
 옛 제자는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고, 원한다면 그곳에 얼마든지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손님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틀째 되던 어느 날 밤, 두 사람이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옛 제자는 그녀를 포옹했고, 그녀는 마치 자기도 그런 게 필요한 것처럼 잠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런 다음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했고, 옛 제자는 급히 그녀를 풀어 주더니 거실 한쪽 구석의 바닥에 앉았다. 몇 시간 동안 그녀는 의자에, 그는 바닥에 앉은 채 그대로 있었다. 바닥은 아주 이상한 황갈색 모자이크 나무로 되어서 촘촘하게 짠 밀짚 카펫처럼 보였다. 식탁 위 촛불이 꺼졌고, 그러자 그녀는 거실의 반대쪽 구석에 가서 앉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청년이 울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이후 며칠 동안 옛 제자와 그녀는 아말피타노를 찾기 위해 몇 배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말피타노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전보다 더 뚱뚱해졋고, 머리카락도 상당히 많이 빠진 듯했다. 그녀는 그를 멀리서 보았고,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말피타노는 낙엽송 아래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많이 바뀌었네요. 그녀가 말했다. 아말피타노는 즉시 그녀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하나도 안 바뀌었네. 그가 말했다. 그녀는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말피타노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났다.



346쪽/ 그날 아침 롤라는 자기가 떠냐아만 한다고 말했다. 브누아는 어려서 내가 필요해요. 아니에요, 사실 그 아이는 날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게 그 아이가 어리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솔직히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애가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봐야만 한다는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아말피타노는 쪽지 하나와 저금한 돈의 상당 액수가 들어 있는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퇴근하면서, 그는 롤라가 이미 집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로사를 데리러 학교로 갔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롤라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걸 보았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소리를 끈 채 그리스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로사는 거의 밤 12시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말피타노는 로사를 침실로 데려가서 옷을 벗기고는 담요를 덮어 주었다. 롤라는 나갈 준비를 하고서 가방을 들고 거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밤은 자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말피타노가 말했다. 집에서 나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야. 이 시간에는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가 없어. 그는 거짓말을 했다. 기차로 가지 않을 거예요. 히치하이크를 할 거예요. 롤라가 말했다. 아말피타노는 고개를 숙이고서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가도 좋다고 말했따. 롤라는 그의 뺨에 키스를 하고서 떠났다. 다음 날 아말피타노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라디오를 켰다. 그 지역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크를 한 사람 중에서 죽었거나 강간당한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상상한 그런 롤라의 모습은 오랫동안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얼어붙은 바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는 기억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그는 어떤 모습도 보지 못했고, 그건 그가 아무것도 기억할 것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옆집 건물에 비친 롤라의 그림자, 거리를 걷는 그녀의 그림자뿐이었고, 그런 다음에는 꿈속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뿐이었다. 꿈에서 롤라는 산트쿠가트에서 나가는 도로 하나를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차가 거의 지나지 않아 텅 비어 버린 거리의 갓길을 걸었다. 차 대부분이 시간을 절약하려고 새로 생긴 고속 도로의 톨게이츠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가방의 무게에 짓눌려 구부정한 모습으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길가를 따라 걸었다. 


426쪽/ 어느 날 밤 아말피타노는 젊은 약사가 선반에서 약품을 찾는 동안, 대화로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그에게 무슨 책을 좋아하며,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약사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변신』, 『필경사 바틀비』, 『순박한 마음』, 『크리스마스 캐럴』과 같은 종류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서 트루먼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순박한 마음』과 『크리스마스 캐럴』은 엄밀히 말해 책이라기보다는 중편소설이기에 예외로 치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젊은 약사의 취향은 무언가를 드러내 주었다. 아마도 그는 전생에 트라클이었던지, 아니면 아마도 먼 옛날에 살았던 오스트리아 작가처럼 아직도 너무나도 절망적인 시를 쓰려고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는 이론의 여지 없이 대작보다는 소품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선호했다. 그는 『소송 』대신 『변신』을, 『모비딕』 대신 『 필경사 바틀비』를, 『부바르와 페퀴셰』대신 『순박한 마음』을, 『두 도시 이야기』나 『피크위크 페이퍼스』대신 『크리스마스 캐럴』을 골랐다. 너무나 슬픈 역설이야. 아말피타노는 생각했다. 이제는 심지어 책을 좋아하는 약사조차도 위대하고 불완전하며 압도적인 작품들, 즉 미지의 세계 속에서 길을 열어 주는 작품들을 읽기 두려워해. 사람들은 위대한 스승들의 완벽한 작품을 골라서 읽고 있어. 마찬가지 이야기지만, 그들은 위대한 스승들이 연습 경기하는 걸 보고 싶어 해. 하지만 위대한 스승들이 무언가와 맞서 싸울 때, 그러니까 피를 흘리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악취를 풍기면서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것과 맞서 싸울 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로베르토 볼라뇨, <2666>-2부,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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