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담요>, 『그들에게 린디합을』 단편소설 기록


23쪽/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동의를 구했다. 그녀의 손은 추위 때문에 빨갛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들은 장갑조차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여자는 몸을 최대한 움츠렸고, 남자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장은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들일 거야."
 장은 아주 잠깐 아들을 떠올렸다. 남자는 혀로 입술을 핥은 후, 팔짱을 꼈다. 그리고 거만한 표정으로 장에게 물었다. 남자는 여자보다는 덜 취한 것 같았다.
 "자식이 있어요?"
 장은 추위 때문에 빨개진 그의 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26쪽/ "『난 리즈도 떠날 거야』는 아주 흥미로웠소."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가 죄송합니까? 나는 소설 같은 거 몰라요. 문학, 예술, 그런 것들, 난 몰라요. 하지만 『난 리즈도 떠날 거야』는 재미있었어요. 그 소설에서 마음에 안 드는 유일한 부분은 '나'가 '리즈'를 떠나는 거였어요. 그것만 빼면 다 좋았어요."
 나는 소주잔만 만지작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 울고 싶었다. 장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어린 부부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테죠. 이봐요. 우리가 죽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내가 당신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도 모르겠소. 그냥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소. 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알 수 있지 않겠소? 그 모든 것들의 이유를."
 나는 결국 울먹이며 장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가 죽을 때가 되면 뭐든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농담이죠."
 장은 불콰해진 얼굴로 익살스럽게 웃었다.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후에 발표한 작품에 대해 한 평론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소설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여전히,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여전히, 몸이 부풀어오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밤이 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장이 야간순찰을 돌 때 그랬던 것처럼, 창밖의 건물을 죽 둘러본다. 그리고 장이 나와 헤어지기 직전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날, 우리가 헤어지기 직전에 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부부에게 왜 담요를 주었느냐고 아까 물었죠? 사실 내가 순찰차로 돌아오기 직전, 어린 부인이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소. '아들과 다른 공연을 보러 가세요. 사람들이 죽지 않는 콘서트요. 사람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 그런 콘서트 말이에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행복한 노래만 흘러나오는 곳이요. 나도 그런 곳에 가고 싶거든요.' 나는 차 안으로 돌아왔고, 조금 울었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되돌아갔소. 그랬더니 그 어린 부인이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어린 부인은 이렇게 말했소. '우린 인간쓰레기예요'라고.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소. 다만 그 부부의 머리를 잠시  동안 쓰다듬어보았소. 그 작고, 동그랗고, 차가운 아이들의 머리를 말이오."


손보미, <담요>, 『그들에게 린디합을』, 문학동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