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사랑에 관하여』,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단편소설 기록


214쪽/ 오레안다에서 그들은 교회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말없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아침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얄타가 보였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이 미동도 없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들이 사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그저 매미들만 소리쳐 울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황량한 파도소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안식, 영원한 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직 얄타도 오레안다도 없었을 때도 이렇게 소리를 냈을 것이고, 지금도 소리 내고 있으며, 우리가 존재하지 않을 그때에도 이렇게 무심하고 황량한 소리를 낼 것이다. 이 항상성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 속에 우리의 구원과 이 땅에서의 삶 그리고 끊임없는 진보가 약속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새벽 빛을 받아 너무도 아름다워 보이는 젊은 여인과 나란히 앉은 구로프는 바다, 산, 구름, 드넓은 하늘이라는 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배경에 매혹되어 마음이 평온해졌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존재의 고상한 목적과 인간의 가치를 망각한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하면,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답지 않은가.
 수위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그들을 한번 보더니 물러갔다. 그러자 이러한 디테일까지도 너무도 비밀스럽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페오도시야에서 오는 증기선이 불을 끈 채 아침 노을빛을 받으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풀밭에 이슬이 맺혔어요."
 안나 세르게예브나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렇군. 이제 갑시다." 
 그들은 도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매일 정오에 해변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며 바다를 즐겼다. 그녀는 잠을 잘 못 자고 심장이 불안하게 뛴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때로는 질투심으로, 때로는 그가 자기를 충분히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의구심에 똑같은 질문을 해대곤 했다. 그는 종종 근처에 아무도 없을 때면 네거리 광장이나 정원에서 갑작스레 그녀를 끌어당겨 열정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아무 할 일이 없는 태평함, 한낮에 누가 보지 않을까 두려워 주위를 둘러보며 하는 이 입맞춤, 더위, 바다 내음, 그리고 쉴 새 없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한가하고 화려하고 배부른 사람들이 그를 새로 태어나게 한 듯했다. 그는 안나 세르게예브나에게 그녀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지를 이야기했고, 참을 수 없이 열정적이었으며, 그녀 곁에서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종종 생각에 잠겨 그가 그녀를 존주아힞 않고,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며, 속물적인 여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들은 거의 매일 저녁 늦게, 오레안다든 폭포든 어딘가 교외로 나가곤 했다. 그러한 여행은 늘 행복했고, 변함없이 아름답고 황홀한 감상을 남겼다.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사랑에 관하여』,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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