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사랑에 관하여』 단편소설 기록


190쪽/ "왜 펠라게야가 정신적으로나 외모로나 자기한테 더 어울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저 괴물, 이 집에선 모두 그놈을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니카노르를 사랑하게 됐을까요. 사랑에서만큼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이 가장 중요한 문제니 모든 것을 이해할 도리는 없겠죠. 아니면 맘대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지요. 사랑에 관해 지금껏 내려진 정의 중 논쟁할 수 없는 진리는 딱 하나예요. 그건 바로 '사랑의 비밀은 위대하다.'는 거죠. 이외에 사람들이 말하고 쓴 모든 정의는 해답이 아니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제들을 제기한 데 불과한 거였죠. 어떤 경우에는 유용해 보이는 설명이 다른 수십 가지 경우에는 소용이 없는 겁니다.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경우를 종합하려 하지 않고 각각의 경우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의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사례를 개별화할 필요가 있는 거죠."
 

196쪽/ 그녀의 시선, 저에게 내밀던 우아하고 고상한 손, 평상복 원피스, 머리 모양, 목소리, 걸음걸이는 매번 저에게 제 인생에 무언가 새롭고 특별하고 중요한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각자의 생각에 잠겨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그녀가 피아노를 연주해 주기도 했지요.


198쪽/ 저는 불행했습니다. 집에서도, 밭에서도, 헛간에서도 그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노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마흔이 넘은 지루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그의 아이들을 낳고 사는 젊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의 비밀을 이해하려 무진 애를 썼습니다. 또 그 지루하고 선량하고 단순한 사람, 너무도 고루한 상식을 대단한 듯 늘어놓고, 무도회장이나 파티장에서는 시장에 내놓은 물건처럼 순종적이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지체 높은 사람들 곁에 서 있는 그 힘없고 쓸모없는 사람, 그럼에도 자기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그녀에게서 자기 아이를 낳은 그 사람의 비밀도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왜 그녀가 나 아닌 그 사람을 만났는지,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삶에 이런 끔찍한 실수가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발버둥쳤습니다.
 도시로 가서 그녀의 눈을 보면 그녀도 매번 나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도 아침부터 특별한 느낌이 들었고, 나의 방문을 예감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말없이 앉아 있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수줍게, 그리고 갖은 애를 써서 숨기곤 했습니다. 우리의 비밀을 우리 자신에게 폭로해 버릴 수 있을 일들이 두려웠습니다. 분명 그녀를 부드럽게, 깊이 사랑했지만, 우리의 사랑을 억누르지 못하면 이 사랑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하고 자문했습니다. 나의 이 고요하고 슬픈 사랑이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나를 그토록 살아하고 믿어주는 이 집의 모든 것을 갑자기 거칠고 잔인하게 산산조각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게 온당한 일일까? 또 그녀가 내게 시집을 온다 하더라도, 내가 그녀를 어디로, 어디로 데려갈 수 있을까? 내 삶이 아름답고 흥미로운 것이었다면, 예를 들어 내가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우는 투사거나 유명한 학자나 배우, 예술가였다면 그건 다른 문제겠지만, 하나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상황에서 그녀를 끌어내 똑같은, 어쩌면 더 일상적인 삶으로 데려가 어쩌겠단 말인가.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내가 병이 나거나 죽으면, 아니 그저 우리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사랑에 관하여』,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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