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상자 속의 사나이」,『사랑에 관하여』 단편소설 기록


 "원래 본성이 고독해서 조개나 달팽이처럼 자기 껍질 속으로 기어들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제법 많거든요. 어쩌면 이건 격세 유전 현상인지도 모르죠. 인간의 조상이 아직 사회적인 동물이 아니고, 외롭게 자기 굴에 살던 때로의 회귀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사람 성격의 일종인지도 모르지요. 누가 알겠어요? 난 자연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니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지요. 하지만 마브라 같은 사람이 드물지 않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네요. 멀리서 찾을 것도 없죠. 우리 도시에서 두 달쯤 전에 벨리코프라는 그리스어 선생이 죽었어요. 제 동료였죠. 물론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날씨가 진짜 좋을 때도 항상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들고, 꼭 솜으로 된 따뜻한 코트를 입고 다니는 걸로 유명했죠. 들고 다니는 우산도 우산집 속에 들어 있고, 시계도 잿빛 세무로 만든 시계집에 들어 있고, 연필 깎으려고 칼을 꺼낼 때 보면 그 칼도 쪼끄만 칼집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항상 옷깃을 높이 세우고 다녀 얼굴도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검은 안경을 쓰고, 스웨터를 입고, 귀는 솜으로 틀어막고, 마차에 탈 대면 마차 덮개를 올리라고 명령하곤 했죠. 한마디로 이 사람에겐는 자기를 뭔가로 덮어 싸려는 극복할 수 없는 열망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자기를 고립시켜 외부의 영향에서 지켜주는 상자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나 할까요. 현실은 항상 그 사람을 짜증스럽고, 두렵고, 근심스럽게 만들었어요. 어쩌면 자기의 이런 소심함, 현실에 대한 혐오를 감추기 위해 늘상 옛것,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찬양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가르친 고대어들은 실은 진짜 현실로부터 도피해 숨었던 덧신이나 우산과 똑같은 거였죠."


안톤 체호프, 「상자 속의 사나이」,『사랑에 관하여』,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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