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구세프」,『사랑에 관하여』 단편소설 기록


69쪽/ 바다에는 의미도 없고 연민도 없다. 증기선이 좀 더 작고, 견고한 철로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파도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증기선을 산산조각 내고 성자와 죄인을 가르지 않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삼켜버렸을 것이다. 잔혹하고 무의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증기선도 마찬가지다. 이 코 큰 괴물은 앞으로 돌진하며 앞길을 막는 수많은 파도를 갈라버린다. 이놈은 어둠도 바람도 공간도 고독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70쪽/ "지금 우린 어디쯤 가고 있는 거지?"
구세프가 묻는다.
"모르겠어. 대양을 지나고 있겠지."
"육지를 볼 수가 없구먼……."
"육지라니! 이레는 지나야 볼 수 있다더군."
두 병사는 모두 인광을 내는 흰 물거품을 바라보며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먼저 침묵을 깬 건 구세프다.
 "아무것도 무섭진 않아."
 그가 말한다.
 "그냥 어두운 숲에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끔찍해. 직므 바다에 거룻배를 내리고 장교가 100베르스타를 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라고 한다면 말이야, 갈 수 있어. 아니면 지금 세례받은 정교도가 물에 빠지면, 구하러 따라 들어갈 수도 있어. 독일 놈이나 중국 놈을 구하지는 않겠지만, 정교도라면 따라가서 구할 거라고."
 "죽는 게 무섭진 않고?"
 "무섭지. 농사일도 걱정이고. 집에 동생 놈이 있긴 한데 착실하지가 않거든. 술주정뱅이에 괜히 마누라나 패고, 부모님도 공경할 줄 모르는 놈이야. 내가 없으면 모두 다 망해 버리고, 아버지랑 어머니는 거지가 돼서 여기저기 떠도시게 될 거야. 근데 이보게, 서 있을 수가 없네. 게다가 여기도 덥구먼……. 가서 잠이나 자세."



5.


 구세프는 병동으로 돌아와 침상에 눕는다. 전처럼 설명할 수 없는 갈망이 그를 괴롭히지만 도대체 뭐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가슴속에선 무언가 그를 짓누르고 머리는 윙윙 울리며, 입속은 바짝바짝 타오랄 혀를 움직이기도 힘들다. 그는 깜빡깜빡 졸며 헛소리를 하다가 악몽과 기침, 더위에 지쳐 아침 녘이 되어서야 깊이 잠든다. 꿈속에 막사가 보인다. 막사의 페치카에서 막 구운 ㅃ아을 꺼내자 근느 페치카 위로 기어들어 자작나무 가지로 온몸을 두드리며 사우나를 한다. 이틀을 자고 사흘째 되는 날 정오에 위에서 수병 두 명이 내려와 그를 들것에 실어 내간다.
 그를 범포로 싸서 꿰매고 무게가 더 나가도록 그 속에 쇠막대기 두 개를 집어넣는다. 구세프를 싼 범포는 머리 쪽은 넓고 다리 쪽은 좁은 것이 당근이나 무처럼 보인다……. 해가 지기 전에 그를 갑판으로 옮겨 가 판자 위에 내려놓는다. 판자의 한쪽 끝은 뱃전에, 다른 한쪽 끝은 간이의자 위에 올려둔 상자 위에 놓여 있다. 주위에는 전역한 군인과 선원들이 둘러서 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
 사제가 장례를 시작한다.
 "언제나, 오늘도, 영원히 세세 무궁토록……."
 "아멘!"
수병 세 명이 노래한다.
 전역한 군인들과 선원들은 성호를 긋고 파도 치는 곳을 바라본다. 인간이 범포에 싸여 지금 저 파도를 향해 날아갈 거라는 사실이 기이하기만 하다. 정말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사제가 구세프에게 흙을 뿌리고 절한다. 사람들은 '영원한 기억'을 노래한다.
 당번병이 나무판자의 한쪽 끝을 들자 구세프는 판자를 따라 미끄러지며 머리를 아래로 하여 밑으로 떨어진다. 그러고는 공기 중에서 방향을 바꾸며 뒤집어지다가 풍덩! 물거이 그를 덮어 일순간 그는 레이스에 감싸인 듯하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파도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는 빠르게 바닥을 향해 나아간다. 바닥에 도달할까? 바닥까지는 4베르스타는 가야 한다고 한다. 8,9사젠쯤 지나자 그는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점점 더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생각을 바꾼 듯 물결에 이끌리며 아래보다는 옆으로 더 빠르게 돌진한다.
 바로 그때 그가 가는 길에 방어 떼가 나타난다. 물고기들은 시커먼 몸뚱이를 보고 얼어붙은 듯 멈추어 서더니 일제히 방향을 바꾸어 사라져벌니다. 하지만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화살처럼 빠르게 구세프에게 달려들어 지그재그로 구세프 주변의 물을 헤치며 헤엄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또 하나의 시커먼 몸뚱이가 보인다. 상어다. 상어는 분명 그를 보지 못한 채 점잔을 빼며 내키지 않는 듯 구세프의 아래쪽으로 헤엄쳐 온다. 구세프는 상어의 등 쪽으로 가라앉는다. 상어는 배가 위로 오도록 몸을 뒤집더니 따뜻하고 투명한 바다에서 여유롭게 놀다가 느릿느릿 두 줄의 이빨을 드러내며 거대한 입을 벌린다. 신이 난 방어들은 멈춘 채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지켜본다. 범포에 쌓인 구세프의 몸을 갖고 놀던 상어는 마지못한 양 벌린 아래턱으로 구세프의 몸을 받치고는 이빨로 조심스레 건드려본다. 범포가 머리에서 다리까지 몸 전체 길이로 찢어진다. 쇠막대기 하나가 떨어지며 방어들을 놀라게 하고, 상어의 옆구리를 치더니 빠르게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이 시간, 저 위에서는 해 지는 곳에 구름이 모여든다. 어떤 구름은 개선문처럼, 어떤 구름은 사자처럼, 또 다른 구름은 가위처럼 보인다……. 구름 사이로 거대한 녹색 빛이 비치더니 하늘 한가운데까지 번진다. 잠시 후 그 빛과 나란히 보랏빛, 금빛, 장밋빛 줄기가 내리비친다……. 하늘은 부드러운 라일락 빛을 띠고 있다. 이 위대하고 매혹적인 하늘을 바라보며 대양은 처음에는 얼굴을 찌푸린다. 하지만 곧 그 자신도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럽고 열정적이며 기쁨에 넘치는 빛깔을 띠어간다.


/안톤 체호프, 「구세프」,『사랑에 관하여』, 안지영 옮김, 팽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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