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 「밤」, 『디어 라이프』 단편소설 기록


356쪽/ 그 당시에는 맹장을 제거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나? 나는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심지어 빨리 맹장을 떼어내지 않아 죽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내 기억에 맹장수술은 내 또래 상당수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물론 아주 많은 아이들이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느닷없는 일도 아니었고 아마 그렇게 불행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학교에도 안 갈 수 있었고 특별대우를 받기도 했다—죽음이라는 운명의 날개에 살짝 닿았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과 달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기쁜 경험이 될 수도 있는 나이였다.
 그렇게 나는 맹장을 떼어난 채 며칠 동안 누워 지내면서 상록수에서 눈가루가 쓸쓸하게 흩날리는 장면을 병원 창문으로 지켜보았다. 이 특별대우에 대한 비용을 아버지가 어떻게 지불할 것인지는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생각에 할아버지의 농장을 처분했을 때 남겨두었던 숲을 팔았던  것 같다. 아마 아버지는 덫을 놓거나 단풍 설탕을 만드는 데 그곳을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땅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수를 느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나는 학교로 돌아갔고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체육수업을 받지 않으며 그 상황을 즐겼다. 어느 토요일 아침 어머니와 나만 부엌에 있을 때였다. 어머니는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병원에서 내 맹장을 제거한 것은 맞지만, 그것만 제거한 건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수술을 하며 당연히 맹장을 제거했지만 더 문제가 된 건 종양이었다. 칠면조 알 크기의 종양이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나는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어머니도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요즘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암인지 아닌지 질문을 하거나 철저히 캐물었을 것이다. 암인지 양성종양인지, 당자엥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말을 왜 꺼내지 못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섹스라는 단어가 구름에 가려져 있듯 그 단어도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는 것뿐이다. 심지어 더 나빴다. 섹스는 혐오감을 주면서도 희열—어머니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우리는 희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 느껴지는 단어였다. 하지만 암이라는 단어는 뺑 걷어차버린 뒤에도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어두운 생명체 같았다.
 

358쪽/ 여동생과 내가 같이 쓰던 침실의 잠자리 배치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그 방은 좁아서 싱글침대 두 개를 나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침대를 이층으로 올리고 사다리를 설치해 위쪽에서 자는 사람은 사다리를 타고 침대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나였다. 나는 어렸을 때 짓궂은 장난을 좋아했는데, 얇은 매트리스 모서리를 들어올리고는 아래쪽에 속수무책으로 누워 있는 여동생에게 침을 뱉겠다고 협박하곤 했다. 물론 동생—이름이 캐서린이었다—이 정말로 속수무책이었던 건 아니었다. 동생은 이불 속으로 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애가 숨이 막히고 궁금해서 결국 밖을 내다볼 때까지 계속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 순간 삐죽 나온 그애 얼굴에 침을 뱉거나 감쪽같이 뱉는 척해서 그애를 열받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하는 장난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그런 장난을 하기에는 너무, 정말 너무 많았다. 동생은 아홉 살, 나는 열네 살이었다. 우리 관계는 늘 불안정했다. 나는 동생을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기도 했지만, 지적인 상담자나 머리칼을 쭈뼛 서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동생에게 어머니의 혼수함에 들어 있던 옛날 옷을 입히기도 했다. 잘라서 퀼트로 만들기에는 너무 좋은 옷이었지만 그렇다고 입고 다니기에는 너무 구닥다리인 그런 옷들이었다. 나는 오래되어 굳은 어머니의 볼연지와 파우더를 동생의 얼굴에 발라준 뒤 정말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동생은 예뻤지만 내가 해준 화장 때문에 기이한 외국 인형처럼 보였다.
 

359쪽/ 밖으로 드러난 근심의 그림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식구들 중 누구도 그것을 들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느낌은 오로지 내면에만 머물러 있었다—내가 쓸모없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 하지만 쓸모없다는 느낌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늘 그랬듯 봄이면 쭈구리고 앉아 뿌리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랄 수 있도록 베이비캐럿을 솎았던 기억이 나니까.
 앞선 혹은 뒤이어 온 여름들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온종일 할 일이 많았던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쉽게 잠들지 못한 이유가 아마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잠자리에 누워서, 다른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는데 나만 한밤중까지 말짱하게 깨어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읽다가 평소처럼 지루해져서 전등을 끄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초저녁부터 내게 소리를 지르며 불을 끄고 자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그 사실 또한 내가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증거였다) 그런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집을 비추던 한낮의 햇빛이 사라지기까지, 늦은 시간까지 켜져 있던 전등빛이 사라지기까지 얼마간 시간이 걸렸다. 무언가를 다 하고, 끝내고, 마무리를 할 때 들리는 일상적인 소음이 사라지고 나면 집은 낯선 장소가 되어갔다.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잠잠히 가라앉고,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쓰임새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가구들도 모두 그 자체의 세계로 물러났다. 더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해방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자유. 낯선 느낌. 하지만 내가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자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나는 라임을 중얼거리기 시작하다 이어서 진짜 시를 읊조렸는데 처음에는 잠을 자보려고 그런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 행위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단어들이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엉터리 언어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을 조롱했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살면서 이따금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지금껏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런 말도 들어봤지만, 그 말에 악의적인 의미가 담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습관적인 조롱으로만 받아들였다.
 다시 생각해보자.
 그때 내가 바라던 것은 이미 잠이 아니었다. 나는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가 나를 붙잡고 있었고,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만큼의 지각은 있었지만 겨우 그럴 수 있는 정도였다. 그것이 무엇이었건, 그것은 내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계속 다그쳤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런 행동이 가능한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게 동기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속살거렸다.
 그 생각에 따르기만 하면 됐다. 얼마나 이상한가. 복수심 때문도, 어떤 일반적인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당신이 어떤 생각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것은 바로 나였다. 내가 그 생각을 쫓아버리려 할수록 그 생각은 더 자주 떠올랐다. 복수심이나 증오심 때문이 아니었다—내가 말했듯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충동이라기보다는 사색에 가까운 지극히 차갑고 깊은 생각 같은 것 말고는. 나는 그 생각을 해서는 안 됐지만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생각이 거기, 내 마음에 걸려 있었다.
 아래층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동생,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생의 목을 내가 조를 수도 있다는 그 생각이.
 내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건 질투심, 사악함, 분노 때문이 아니라 밤중에 내 바로 옆에 누워 있는 광기 때문일 것이다. 잔인한 광기도 아니고, 그저 짓궂게 골려주고 싶은 어떤 마음.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잠복해 있다가 더디고 짓궂게 슬그머니 들고일어나는 것 같은 부추김.
 그 생각이 내게 말할 것이다. 뭐 어때. 가장 나쁜 짓을 하는 게 뭐가 어때서?
 가장 나쁜 짓. 여기, 가장 익숙한 장소, 우리가 지금껏 누워 자던 방,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그 공간에서. 나는 그 누구도,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이유도 없었다.
 그러지 않으려면 침대에서 일어나 그 방에서,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서 동생이 잠든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깨우지 않고 조용히 계단을 내려와 불빛 없이도 훤히 찾아갈 수 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문은 잠긴 적이 없었다—열쇠가 있었던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손잡이 아래에 의자를 받쳐놓아서 누구든 들어오면 우당탕 소리가날 것이었다. 그 의자를 소리 없이 치우려면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363쪽/ 우리집의 동쪽과 서쪽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동쪽에는 타운이 있었는데 타운의 어느 곳도 보이지는 않았다. 2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줄지어 들어선 집들과 가로등, 수도시설이 있었다. 어느 곳도 보이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오래오래 쳐다보면 불빛 같은 것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서쪽으로는, 길게 휘감아 도는 강과 들판과 나무와 일몰이 가로막히는 것 없이 다 보였다. 사람들과 얽혀들 일도 없고, 일상적인 생활도 영원히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이리저리 서성였다. 처음에는 집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지만 펌프 손잡이나 빨랫줄 아래 단에 부딪히지 않을 만큼 내 시력을 믿게 되자 이곳저곳 더 멀리 나가보았다. 새들이 하늘을 휘돌며 지저귀기 시작했다—저 높은 나무 위에서 새들이 저마다 그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새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최초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고, 그러면 어둠이 불쑥 나를 휩쌌다. 의자를 제대로, 조심스럽게, 조용히 기울여 문손잡이 아래 다시 받친 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눈이 감기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단단히 조심하며 문들을 통과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베개 위로 쓰러졌고 느지막히—우리집에서는 늦은 식나이 대략 여덟시였다—일어났다.
 그때 나는 기억력이 좋았지만 그 일은 아주 어리석게 느껴져서—그 행동의 가장 안 좋은 점이 바로 어리석다는 것이었다—머릿속에서 아주 쉽게 몰아낼 수 있었다. 동생들은 공립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갔고 식탁에는 아직 동생들이 남긴 음식이 놓여 있었다. 남은 우유에는 시리얼 몇 알이 떠 있었다.
 어리석었다.
 여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리는 해먹의 양쪽 끝을 차지하고 앉아 흔들거렸다.


 낮에 나는 해먹에서 살다시피 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마 그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밤에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내게 낯 시간의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겠다는 간단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밤이 되면 그문제는 되살아났다. 악마들이 또다시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좀더 노력하면 상황이 나아져서 잠을 잘 수 있을 거라는 헛된 생각은 접고, 곧바로 일어나 침대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슬그머니 집밖으로 빠져나왔다. 전보다 더 쉽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심지어 방안의 모습도 더 잘 보였는데, 더 낯설게 느껴졌다. 백 년 전쯤 이 집을 지을 때 목재의 홈과 촉을 서로 끼워 시공한 부엌 천장도 알아볼 수 있었고,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오래전 어느 밤 집안에 갇혀 있떤 개가 물어뜯어놓은 북쪽 창틀도 알아볼 수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다—북쪽 창문 밖에 모래 놀이장이 있어서 어머니가 창문으로 나를 지켜보았던 일. 지금은 그곳에 뭇어하게 자란 조팝나무들이 꽃을 피워서 바깥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부엌 동쪽 벽에는 창문은 없었지만 현관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서서 하얀색 시트부터 두꺼운 짙은 색 작업복까지 무거운 젖은 빨래들을 널었고, 빨래가 말라 뽀송뽀송한 냄새가 나고 우리를 반기는 듯하면 다시 걷어들였다.
 밤 산책을 나갈 때 이따금 그 현관 계단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 앉았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타운 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그냥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머지않아 일하러 나가야 하는 살마들이 모두 일어나 문을 열고 우유병을 안에 들여놓으며 부산하게 움직일 것이다.
 어느 밤—내가 일어나서 돌아다닌 지 스무번째 밤인지, 열두번째 밤인지, 아니면 여덟번째나 아홉번째 밤인지 모르겠다— 바로 앞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는데 뒤돌아서기엔 이미 늦은 듯했다. 누군가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돌아선다면 붙잡힐 테고 그러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보다 더 곤란해질 것이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타운이, 보이지 않는 그 불빛이 바라보이는 현관 계단에 앉아 있었다. 


367쪽/ "잠드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니?" 아버지가 말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그러면 내가 돌아다니고 있었던 걸 설명하기가 곤란해질 것 같아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여름밤에는 종종 그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지쳐 떨어져 침대에 눕지만 잠이 드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잠이 싹 달아나거든. 그런 거니?"
나는 그렇다고 했다. 


368쪽/ 여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그애를 다치게 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아버지가 내 말뜻을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었다.
"목을 조를까봐서요." 그리고 내가 말했다. 나는 결국 멈추지 못했다.
이제 그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그 말을 하기 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들었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자고 있는 어린 캐서린의 목을 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음."
그러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단다."
아버지는 그 말을 사뭇 진지하게 했다. 당황한 기색이나 화들짝 놀라는 반응은 없었다. 사람ㄷ르은 보통 그런 생각을 품곤 하지, 두려움이라고 해도 좋고.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단다. 그저 꿈 같은 것이거든. 장담할 수 있어.
 아버지는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위험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에테르의 영향일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병원에서 준 에테르 말이야. 꿈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생각이야. 우리집에 유성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물론 유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 일은 불가능의 범주에 들어간다).
 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한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 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아마 다른 말도 했을 것이다. 내가 여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생활 전반에 무슨 불만은 없는지 말해보라고 했던 것 같다. 만약 요즘 같은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버지는 내게 심리치료를 받게 했을지도 모른다. (한 세대가 지나고 소들이 늘어난 지금, 나라면 아이에게 그렇게 할 것 같다.)
 사실인즉, 아버지의 말은 내게 효과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경멸이나 놀라움도 내비치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지만 그것들은 이내 사라진다.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
 요즘에는 부모 노릇을 오래 하다보면 실수인 줄 아는 실수뿐 아니라 딱히 실수인 줄 모르는 그런 실수들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내심 얼마간 초라해지고 이따금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369쪽/ 하지만 그날 아침 동이 틀 무렵 아버지는 그저 내가 들어야 할 말과 내가 머지않아 까맣게 잊어버릴 말만 해주었다.
아마 아버지는 그날 아침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더 단정한 작업복을 입었겠지만, 예상했던 대로 대출금 상환기한을 연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지만 경기는 회복되지 ㅇ낳았다. 우리를 부양하고 그 당시 지고 있던 빚을 갚으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가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에 정식 병명이 있다는 것을, 혹은 그 증상이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을.
어찌됐건, 그때부터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앨리스 먼로, 「밤」, 『디어 라이프』, 문학동네, 정연희 옮김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