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밤의 수족관」 단편소설 기록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정말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친척집 전화번호는 물론, 친척들의 주소와 생년월일까지도 모두 한 번 들으면 결코 잊는 법이 없었지. 그래서 엄마는 나를 걸어다니는 수첩으로 활용하기도 했어. 커서도 기억력에 관해서라면 자신이 있었어. 나는 친구들이 했던 사소한 말들이나 행동들까지 모두 기억해내는 사람이었어. 그것은 당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지. 나는 당신의 생일, 취미와 특기, 혈액형과 가족관계는 물론이고, 당신의 콤플렉스, 실수담, 사소한 스캔들까지 모두 다 기억했어.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내가 말하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몹시 걱정했어. 내가 당신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었지.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당신의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했어. 그렇기 때문에 내 바람대로 우리가 결혼을 한다 해도 나는 당신의 실체를 알고 실망하게 될 거라고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정말 묻고 싶었어. 도대체, 실체란 것은 무엇이야?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봐. 그때, A라는 사사람은 오로지 B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그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처럼, B에 대한 A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그러면 B는 A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어. 그런 게 있다고 믿지도 않았고. 만약에 C라는 사람이 있다면, C에게 존재하는 A와 B에게 존재하는 A가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렇기 때문에 내 기억들은 당신이라는 실체를 가리는 허상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내 안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증거들이었어. 그러니까 나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던 것 같아.

—백수린, 「밤의 수족관」,『젊은 소설 2012』,문학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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