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그 순간 너와 나는」 단편소설 기록



 아이를 잃어버린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고수부지에서 거래처와 중요한 사업상의 전화를 하느라 잠깐 손을 놓았는데 그걸로 끝이었다. 전화를 마치고 난 후 딸애를 찾아보았지만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 세월 동안 수없이 생각했다. 전화하는 동안 계속 손을 잡고 있었어야 했다거나, 혹은 아이의 옷에 이름표를 붙여놨어야 했다거나, 혹은 이리저리 풍선 꾸러미를 들고 있는 아이들을 쫓아다닌 대신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다거나, 혹은, 혹은, 그리고 수많은 혹은…… 
 어쨌거나 그 일이 있고 난 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르자 주위에서는 점차 포기하라고 권유하기 시작했다. 자주 초점을 잃은 눈빛을 보내는 아내와도 헤어졌으며 그 후로 난 자주 손을 자해하는 꿈을 꿨다. 그렇게 땀에 젖어 깨는 새벽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애에 젖어 나의 빈 손을 들여다보았다. 그깟 전화가 뭐라고 아이를 놓친 손. 떨리는 마음으로 앨범을 뒤적여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 동시에 누구라도 한번 보면 꼭 찾아주고 싶을 만큼 측은하게 보이는 사진을 고르는 손. 이런 일이 아니라면 평생 한 번 가보지 못할 낯선 동네에서 아이의 사진이 새겨진 전단지를 나눠주던 손.
 그렇게 십여 년이 흐르고 제보 전화도 그에 비해서 점점 줄어들었지만, 나는 때때로 딸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고 오열하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그리고 꿈의 맨 마지막에서 항상 나는 안도하였다. 한껏 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러자 내 자신이 약간은 혐오스러워졌다. 언젠가 민혁을 위시한 친구들과 함께 덫에 갇힌 쥐를 물이 가득한 양동이에 집어넣을 때처럼 말이다. 그 후로 한동안 난 헛구역질을 햇지만 사실 인생이 그런 게 아닌가. 누구나 다 자기 안에 약간의 역겨운 기억들을 축적하며 보다 큰 혐오를 이겨내는 법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의 예방주사인 셈이다. 몸 안에 약간의 더러운 균을 집어넣어 오히려 목숨을 이어가게 만드는 예방주사의 역설 말이다. 




어쨌거나 민혁이네 어머니는 꽤나 엄격했다. 토요일 같은 주말에 놀러와서 그 애와 같이 책을 읽는 것은 뭐라 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첫째, 저녁식사 전에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 둘째, 책은 절대로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토요일 오후가 되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친구의 서재를 나서야 했다. 그리고 나에게 친근하던 민혁에 대해 몹시도 기묘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그건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감정이었다. 민혁이네 집 서재를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보면 내가 그 애한테 느끼는 감정은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한 슬픔도 아니었다.




어쩌면 믿음이란 새로 산 운동화 한 켤레 같은 것이다. 세트로만 의미 있고, 한 짝만 있어서는 절대로 팔리지 않는다. 믿기 힘든 얘기를 하는 사람과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이 짝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신고 발걸음을 내디디면 세상은 걷기에 편해진다. 글쎄, 세상은 그렇게 걸어야 하는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 내딛는 길이 좀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진다는 것이다. 




그날 그렇게 행당동 고개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얘기하는 동안 나는 미설이와 꽤나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겨온 비밀 하나를 그 애한테 말해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답례였따. 그렇다. 믿음이란 한 켤레의 운도오하 같은 것이므로 왼발 다음에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뎌 보조를 맞춰야 한다. 결코 왼발만으로는 세상의 길을 걸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 왼발, 그다음에는 오른발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밤에 싸르락대며 뒷산 대숲이 내는 저승의 소리를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저승의 소리가 아니라 누나가 전하는 다른 차원의 통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두 잊어버렸을지 몰라도 어쩌면 누나는 그 밤 댓잎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통해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기쁨이 있고 또한 어떤 슬픔이 있는지를 일기예보 하듯이 모조리 들려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말이다.
 그건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네가 스무 살 때는 이런 슬픈 일이 생길 거야. 하지만 걱정 말렴.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너는 몇 년 후, 그 일이 계기가 되지 않았으면 도무지 경험하지 못할 어떤 기쁨을 누릴 테니까. 하지만 그 서른 살을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렴. 넌 또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슬픈 일을 겪을 거니까. 그렇지만 너무 울지 말렴. 그게 씨앗이 되어 너에겐 다시 좋은 일이 생길 테니까. 원래 인생이란 그런 거지…… '
 그건 유년기의 밤, 대숲이 가르쳐준 미래의 일기예보였다. 즉 미래로부터 흘러들어온 뉴스에는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기쁨과 슬픔이 실려 있었고, 이제 난 죽은 누나가 예고해 준 대로 내 안에 딱 들어맞는 온정과 풍경, 그리고 애수와 염원을 찾아헤매야 하는 것이다.




난 오래된 가방의 무게와 편지의 감촉을 느끼며 옛날 그 애의 손가락을 묻었던 공터를 찾아보았다. 지금은 민자역사와 더불어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고 단단한 화강암 판으로 포장한 광장으로 변했지만, 나는 기차들이 지나가는 궤적들 가장자리로 자홍색 맨드라미와 핏빛의 샐비어가 부드럽게 피어 있던 그 공터의 위치를 알아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쓸쓸한 석양이 그 애의 으스러진 손마디를 핏빛으로 물들이던 그해 여름도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왕십리역 민자역사의 조성 공사 중에 인부들은 그 조그맣고 하얀 손가락뼈를 찾아냈을까? 아니면 최대한 깊이 묻겠다는 의도대로 그 손마디는 아직도 왕십리의 역사 밑에서 고요히 썩어가고 있을까? 아마도 지금의 대형쇼핑몰 아래쯤에서 말이다.




-조현, 「그 순간 너와 나는」『이상문학상 작품집 201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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