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후기 영화

이번에도 시험기간의 압박으로 서울여성영화제에는 두 편의 영화밖에 보지 못했다. 라고는 하지만 작년보다는 상영작 수가 훨씬 적었기 때문에 영화 선택이 쉽기는 했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서울여성영화제는 작년에 10회를 기념한 만큼, 이번부터는 새롭게 다시 출발하는 기분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서 조금은 더 간소하고 작년보다는 축제 느낌이 덜 난 것 같지만....그래도 여전히 특별한 느낌이 있는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그 무렵의 신촌 아트레온 근처에는 언제나 들뜬 공기가 감돌고 있어서, 나는 그 분위기에 참여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번에 내가 선택했던 영화는 켈리 리차드 감독의 <Wendy and Lucy 웬디와 루시>, 그리고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의 <Home 홈> 이다. 우연하게도 두 영화는 모두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웬디와 루시>에서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라 할 수 있으며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美미 '제국'의 가장자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홈>에서는  강압적인 국가개발주의와 가부장제를 연결시키며 '내몰려 있되 벗어나지 못하는' 삶의 양상을 그려낸다.


<웬디와 루시> 같은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희망을 암시하고 바로 그 희망을 꺾어버리고 또 관객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주고 그 기대를 무너트리는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웬디는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일자리가 많다는 알래스카로 향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무수한 실패를 겪는다. 자동차가 고장나고 몰래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히고 재판을 받을 돈이 없어 서류를 작성하고 그 와중
애 애완견 루시를 잃어버리고 자동차를 고치려고 시도하나 어마어마한 수리비 앞에서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에서는 유일한 동료이자 소통의 상대라 할 수 있었던 루시와도 헤어진다. 웬디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알래스카로 향하지만 그녀가 그 먼 알래스카로 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고초를 겪어야 할 것인지, 과연 알래스카에 도착해서는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관객은 불투명하고 씁쓸한 미래만을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홈>은 시종일관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의 <웬디와 루시>보다는 한 톤 더 밝은 분위기의 영화이다.
하지만 첫 부분에서 제시되던 유토피아적인 가족의 모습은 이들이 살던 집 앞에 고속도로가 개발되면서 점차 사라져간다. 둘째딸이 어머니에게 왜 집에만 있느냐, 예전처럼 일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집이 무슨 감옥이니? 나는 너희들과 함께 집에 있는 게 좋아."라고 답했던 어머니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단란하고 평화롭던 집은 순식간에 감옥과 같이 변해버린다. 
고속도로의 소음과 공해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집을 커다란 돌벽으로 둘러싸 버리는 가족의 모습은 집(가정, 가부장의 굴레)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차마 떠날 수도 없는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기제이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가족들은 국가와 가족이라는 억압기제를 모두 부수어 버리고 집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정처없이 걷는 황야에서 안정된 미래를 찾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대답만이 기다리고 있다. 

 '내몰려 있는, 갈 곳 없는, 커다란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이라는 공통적인 테마가 눈에 들어왔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속에서의 철저한 소외를 나타내고 있는 이 영화들은 한 동안 몹시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었다. 


덧글

  • 2011/04/11 00: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롯 2011/04/11 21:00 #

    2011년에도 보고 와서 그것 정리하기 전에 전년도 것들을 정리해둬야 겠다 싶어서 예전 블로그에서 가져왔어요 :)
    늘 같은 시기에, 매년 열리니까 저는 어째 관성처럼 다시 가고 있더라고요. 서울에 잠깐 있으셨다가 다시 내려가보셨나봐요. 비밀글님 소식에 제가 다 아쉽네요. 요즘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서 블로그가 뜸해요. 비밀글님을 뵈어야 할 텐데 언제쯤에나 뵐 수 있을런지 ㅠㅠ
  • 레미키 2011/04/11 21:25 # 답글

    나도 웬디와 루시 봤다고 해서 예전에 같이 얘기했던 거 생각난다. <천국의 가장자리> 언니가 추천했었는데 아직도 못 봤네ㅠ 찾아봐야지.. <홈> 포스터는 언제 봐도 맘에 드네요ㅋㅋ
  • 오롯 2011/04/12 09:59 #

    <천국의 가장자리>는 예전에 좋아했던 거라 다시 봐도 좋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종종 혼자 생각하곤 해. 저걸로 리포트도 썼어서(그리고 정말로 열심히 썼어서) 더 애착이 남는 영화같기도 하고^~^ <웬디와 루시>는 이제 그냥 나에게 거의 미셸 윌리엄스 ㅎㅇㅎㅇ 로 기억되고 있는 영화. 그리고 <홈> 포스터 정말 좋지. 잘 만든 듯. 보는 내내 정말로 심신이 괴로웠던 영화였어. <블랙스완>을 보면서 느꼈던스트레스가 내부에서 외부로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면 <홈>을 보면서 느낀 스트레스는 철저하게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것이었어, 내게는.
  • 2011/04/12 09: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롯 2011/04/12 10:01 #

    어랏 동접이네요, 비밀글님. 드문 일인데 신기해요. 네 그때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게요. 어쩐지 전해주어야 할 것을 맡아둔 느낌이에요 히히.
    너무 힘 많이 내지 말고 적당히 내시고요 :) 전력으로 질주하다보면 지치는 법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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