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편에서 젤다를 읽다, 산문 <F씨 부부를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책 기록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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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시장이 붕괴하던 날 밤, 우리는 생라파엘의 보리바주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링 라드너가 1년간 묵었던 방에. 우리는 전에도 수없이 묵었던 그곳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벗어났다. 과거가 아련히 달아나 영원히 추억이라는 화목한 개념으로만 남는 것보다도, 과거와 다시 마주하고 그것이 더는 현재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아는 일이 더 슬프다.
 아를의 쥘 세자르 호텔에서 우리가 묵었던 방은 한때 예배당이었다. 우리는 물이 고여 썩어 가는 운하를 따라 로마 시대 주택 유적에 갔다. 위풍당당한 기둥들 뒤에는 대장간이 자리잡았고, 소 몇 마리가 드문드문 흩어져 금색 꽃들을 뜯어 먹었다. (...)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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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잔 팔라스의 발코니 난간 너머에서 범선들이 산들바람 속에 새들처럼 자태를 뽐낸다. 버드나무는 테라스의 자갈 바닥에 레이스 문양을 떠 놓았다. 여기 사람들은 생사를 떠나온 세련된 도피자들이다. 이들은 아늑하게 깊은 발코니에서 토라진 동작으로 찻잔을 달그락댄다. 그리고 화단과 노랑꽃등나무가 있는 스위스 호텔들과 도시들의 이름을 늫어놓는다. 심지어 가로등조차 버베나 꽃을 왕관처럼 썼다.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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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일본식 등을 휘황하게 밝힌 카페를 향해 걸을 때 백구두가 축축한 어둠 속에서 라듐처럼 빛났다. 우리가 아직 여름 호텔들과 유행가 철학을 믿던 시절, 그 좋았던 시절 느낌이 났다. 다른 날 밤에는 비엔나 왈츠를 추며 바닥을 마냥 미끄러져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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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에서 최고 호텔은 브리스톨 호텔이었다. 호텔은 우리를 반갑게 맞았따. 왜냐, 그곳도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방 창문에서 비애에 잠긴 느릅나무들 너머로 진부한 바로크 양식 오페라하우스가 내다보였다. 자허 부인의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벽을 두른 오크 패널 위로 프란츠 요세프 1세가 오래 전에 마차를 타고 어딘지 보다 행복한 곳으로 가는 그림이 걸려 있었고, 가죽 가리개 뒤편에서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 한 명이 저녁을 들고 있었다. 도시는 이미 가난했고, 아니 여전히 그랬고, 우리 주위의 얼굴들은 고단해 보이고 방어적이었다.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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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래전부터 버뮤다에 가보고 싶었다. 드디어 갔다.  엘보 비치 호텔은 신혼부부로 가득했다. 다들 서로를 보는 눈에 어찌나 끝없이 불꽃이 튀던지, 우리는 냉소를 머금고 호텔을 옮겼다. 세인트 조지 호텔은 괜찮았다. 부겐빌리아 덩굴이 나무 몸통을 따라 폭포처럼 쏟아지고, 계단들이 민가 창문들 너머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들을 지나 길게 이어졌다. 고양이들이 난간에서 잠을 잤고, 귀여운 아이들이 자랐다. 우리는 바람이 몰아치는 둑길을 따라 자전거를 몰았고, 해변냉이 덤불 사이에서 몸을 긁는 수탉과 그런 류의 현상들을 꿈꾸듯 몽롱하게 바라보았다. 광장에 묶어 놓은 말들의 앙상한 잔등을 내려다보며 베란다에서 셰리주를 마셨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여행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쉴 것 같았다. 버뮤다는 다년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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