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리스 <책을 태워 버린 날 The Day They Burned the Books> 단편소설 기록


내 친구 에디는 작고 마른 소년이었다. 손목과 이마에 푸른 혈관이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 애가 결핵을 앓아서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난 그 애를 사랑했지만 때로는 멸시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소여 씨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 속세에서 뭘 하고 사는 건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농장주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고 은행원도 아니었다. 가게를 운영하지도 않았다.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었다. 신사도 아니었는데, 그게 중요한 거였다. 여기 소小앤틸러스제도에는 달과 사랑에 빠져서 눌러앉은 낭만주의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다들 신사였고, 작문할 때 'h'를 쓸 줄 모르는 소여 씨와는 아주 달랐다. 게다가 그는 달은 물론 소앤틸러스제도에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질색이었고, 전혀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하곤 했다.


/ 물론 소여 부인에게는 그런 것들을 보상할 만한 게 있기는 했다. 힐 거리의 아주 근사한 집에 살았으니까. 정원이 아주 크고, 거기에 멋진 망고나무도 한 그루 있었는데 망고가 풍성하게 열렸다. 그 나무의 망고는 작고 동그란 게 즙이 많고 아주 달았다. 잘 익으면 노랗고 불그스레한 게 아주 탐스러웠다. 어쩌면 그게 그녀가 받은 보상 중 하나일 거라고 난 생각하곤 했다.
소여 씨는 이 집 뒤편에 방을 만들었다.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서 나무 향기가 아주 향긋했다. 벽마다 책장이 놓였다. 영국 우정공사 증기선이 들어올 때마다 그에게 소포가 왔고, 빈 책장이 점점 채워졌다.
한 번은 『천일 야화』를 빌리러 에디와 그 방에 갔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모든 것이, 심지어 홈통의 물까지 잠에 빠진 듯한 뜨겁고 고요한 오후였다. 하지만 소여 부인은 자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문간에서 머리만 들이밀고 우리를 보았고, 난 그녀가 그 방과 책들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으로 '조국'에 대한, 그러니까 영국에 대한 의심을 내게 심어 준 것은 바로 연한 푸른 눈과 담황색 머리색―엄마처럼 조용할 때가 많지만 완전 아빠를 빼다 박은―을 지닌 에디였다. 영국은 본 적도 없는 애들―우리 중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이 내키는 대로 손짓 발짓을 하며 그곳의 재미에 대해 떠들어 댈 때 에디는 조용히 있었다. 런던과 뺨이 불그레한 아름다운 귀부인들, 극장과 상점, 안개, 겨울에 활활 타오르는 석탄 화롯불. 이국적인 음식(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먹는 뱅어랄까)과 크림을 얹은 딸기에 대해. '딸기'를 발음할 때는 언제나 일부러 제대로 된 영국 발음이라고 생각되는 목 긁는 소리를 내곤 했다.

(...)

그 애는 대담했고,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일단 뜨거운 열기에 괴로워하는 법이 없었다. 하얀 피부가 지닌 어떤 차가움이 그걸 막아 주는지도 몰랐다. 타서 벌개지거나 가무잡잡해지는 법이 없었고, 주근깨도 별로 없었다.
이글이글 뜨거운 날이면 특히 힘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이제 잔디밭을 뛰어서 두 바퀴 돌고, 네가 사막에서 목이 타서 ㅈ구어간느 척하면 내가 물을 가져다주는 아랍 추장을 할게."
"물은 천천히 마셔야 해." 그 애가 말하곤 했다. "너무너무 목이 마른 상태에서 물을 급하게 마시면 죽는단 말이야."
그래서 난 목이 탈 때 천천히 물을 마시는 관능적인 느낌을 알게 되었다. 분홍색 얼음을 넣은 코카콜라 잔이 다 빌 때까지 한 모금씩 조금씩 마시는.
나의 열두 번째 생일이 지나자마자 갑자기 소여 씨가 세상을 떴고, 에디의 특별한 친구였던 나는 하얀색 새 옷을 차려입고 장례식에 갔다. 그 자리에 어울리게 머리칼이 좀 보슬보슬해 보이라고 전날 밤에 직모를 설탕과 물로 적신 후 얇은 가닥으로 빡빡하게 꼬았다.
장례식이 끝나자, 관 뒤를 여왕처럼 따라가면서 적절한 순간에 눈이 빠지도록 울었던 소여 부인이 정말 훌륭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았다. 그런데 에디는 좀 이상하지 않아? 전혀 울지 않잖아.
그 후 에디와 나는 책이 들어찬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침에 밀드러드가 와서 청소를 하고 나면 그 외엔 아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고, 소여 부인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소여 씨의 유령도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서서히 희미해졌다. 블라인드는 늘 반쯤 내려와 있었고, 밝은 햇빛 아래 있다가 들어가면 마치 암녹색 연못으로 뛰어드는 느낌이었다. 책장과 베이즈 천이 깔린 책상과 고리버들 흔들의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방이야." 에디가 그렇게 불렀다. "내 책."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내 책."

(...)


/시집이 꽂힌 책장이었다. 바이런의 시집과 밀턴의 시집 등이 있었다. 펄럭, 펄럭, 펄럭하면서 모두 팔 책 더미로 던져졌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책은, 가죽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태울 책 너미로 갔는데, 소여 부인의 눈이 반짝하는 것으로 난 책을 쓴 남자들보다 책을 쓴 여자들이 더 나쁘다는 걸, 말도 못하게 더 나쁘다는 걸 알았다. 남자는 자비롭게 총으로 쏘아 죽여도 되지만 여자는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는 듯이.
소여 부인은 우리가 거기 있다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하는지, 편하고 자유롭게 숨을 쉬면서 리듬에 맞춰 손을 움직여 찢고 내던졌다. 아름다우저 보이기도 했다. 밖의 검푸른 하늘이나 금빛 나는 갈색의 긴 가지를 뻗고 있는 망고나무처럼.
 에디가 "안 돼"하고 외쳤을 때도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안 돼!" 그가 새된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그건 안 돼. 내가 읽고 있는 거라고."
 그녀가 웃었고, 그는 튀어나올 듯이 눈을 부릅뜨고 그녀에게 돌진했다. "그럼 이제 엄마도 미워할 거야. 엄마도 미워할 거라고."
 에디가 엄마 손에서 책을 잡아채고 엄마를 거칠게 밀쳤다. 그녀가 안락의자로 넘어졌다.
 흠, 나 역시 이런 일에 빠질 수 없지. 그래서 난 불에 탈 운명에 놓인 책 더미에서 책을 하나 잡아채고는 내 쪽으로 뻗은 밀드러드의 팔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둘 다 정원으로 나왔다. 파두가 양쪽으로 줄지어 자란 길을 따라 뛰었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맹렬하게 달렸고, 밀드러드가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달리면서 들고 있던 책은 헐렁한 갈색 삼베옷 앞자락에 집어넣었다. 따뜻한 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 "자, 돌아가자." 내가 말했다. "너희 엄마가 너한테 화내시지 않을 게 분명하면 돌아가자고. 곧 어두워질거야." 
 대문 앞에서 그가 내게 가지 말라고 했다. "아직 가지 마. 아직은."
 우리는 망고나무 아래에 앉았고, 내가 손을 잡자 에디가 울기 시작했다. 우리 집 마당 빗물받이 돌에서 여과기로 물이 떨어지듯이 눈물이 방울방울 내 손등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나도 울음이 터졌고, 내 손 위로 내 눈물이 떨어지는 걸 보며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결혼한 사이인지도 몰라.'
 '그래, 분명히 결혼한 거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에디가 완전히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물었다. "네 책은 뭐야?"
 "『킴』이야. 하지만 찢어졌어. 시작이 20쪽이야. 네 건 뭔데?"
 "모르겠어. 어두워서 안 보여." 내가 말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난 내 방으로 급히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이 책이 지금까지 내게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일이므로 다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어로 쓰인 그 책은 따분해 보였던 것이다. 제목이 『죽은처럼 강한』이었다.



- 진 리스, 세계문학 단편선 32 <한잠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부인>중에서
정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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