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라 리비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책 기록


14-15
짐 가방에 더해 운반 가능한 (곧 몹시 무거운) 컴퓨터까지 짊어지고 이 산길을 올랐던 그 바싹 마른 8월 오후, 난 짧은 파란색 면 드레스 차림에 걷기 좋은 스웨이드 신을 신고 있었으며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에 겨워 있었다. 행복이 진행 중일 때 우리는 그때까지의 일은 깡그리 읹는다. 그 직전까지는 우리 인생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양. 행복은 오직 현재 시제로만 발생하는 감각이다. 머잖아 내 애인 곁으로, 내 크나큰 사랑에게로 돌아갈 걸 아는 가운데 혼자인 게 나는 좋았다. 피자집 옆 옛날식 공중전화 부스에서 저녁마다 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땀 묻은 100페세타 동전 뭉치를 손에 그러쥐고 서서, 그이와 내 목소리를 연결해 주는 잔돈을 투입구에 굴려 넣으며, 지금부터는 오직 사랑, '위대한 사랑'만이 내 삶의 유일한 계절이 되리라 믿었다.
 그 사이 사랑이 다른 것으로 변질되어 더는 알아볼 수 없게 되었던 반면, 펜시온 앞 테라스와 올리브 나뭇가지 아래 자리한 식탁과 의자는 변함이 없었다.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화려한 장식의 타일 바닥. 고목 종려나무가 있는 안뜰을 향해 열린 묵직한 나무 문들. 위엄 있게 현관 홀을 차지하고 선 반들반들한 그랜드피아노. 회반죽 발린 차고 육중한 흰 돌벽. 내 방도 변함없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좀먹은 옷장 문을 열고 봉에 걸린 한결같이 굽은 네 개의 철사 옷걸이를 보는 순간, 그 모습이 버림받은 사람의 어깨를 닮았다는 쓸쓸한 인상을 받았다.

28-29 
여자란 그늘에 가린 검은 대륙이 아니라 외려 환히 밝혀진 교외에 가깝다고 뒤라스는 말하려 한 걸까? 모성이 여성의 유일한 기표라 친들, 품 안의 자식도 적절히 돌봄받으며 건강하게 자란 이상은 언젠가 우리 품에서 고개를 돌려 다른 이를 보리라는 걸 우리는 알지 않는가. 아이는 타인을 볼 것이다. 세상을 볼 것이고 세상과 사랑에 빠질 것이다. 어떤 엄마들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해 온 세상이 하필 자기 아이가 사랑하는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을 보며 이성을 잃기도 한다. 여성성이란 교외는 썩 살기 좋은 동네가 아니다. 그렇다고 자녀에게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언제고 다른 이를 만나러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니까. 그래, 나만 해도 코트 지퍼를 여며 주느라고 문을 나서는 내 딸아이들을 여러 번 불러 세우지 않았던가. 걔들이야 차라리 춥고 자유로운 편을 선호한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36-37
"당신 작가 아닌가요?"
이건 엄밀히 말해 솔직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이미 몇 년 전, 그가 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힌 치즈를 관광객에게 판매하려고 계산대에 진열해 놓고는 그 뒤에 앉아 내가 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얼핏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작가란 걸 이미 알고 있을 테고, 그렇다면 과연 뭐가 알고 싶어 이 얘끼를 꺼낸 거려나. 그가 실은 다른 걸 묻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기야 나부터가 실은 다른 걸 묻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에스컬레이터만 탔다 하면 눈물이 나는 이유를 여전히 간파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그가 "당신 작가 아닌가요?"라고 물었을 때 내 머릿속엔 새삼스레 욕실에 붙은 골격 구조 포스터가 떠올랐다. 당장 내 몸의 골격 구조만 놓고 봐도 사회 구조 안에서 자유로이 활보할 방법을 확보한 건지 아직 확신할 길이 없었다. 밤중에 혼자 찾아간 한적한 식당에서 자리를 잡기조차 이리도 까다롭지 않았던가. 내가 조르주 상드였다면야 피우던 시가를 바닥에 내던지곤 6인용으로 세팅된 식탁에 보란듯이 앉아 큰 소리로 통돼지 구이와 최고급 레드 와인 됫병을 시켰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극적 행동은 원하지 않았다. 그 반면에 전날 밤, 자정이 다 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 건 내가 진정 원해 한 일이었다. 호텔로 가는 길목을 놓쳐 길을 잃은 건 사실이었지만, 한편으론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서 길을 잃고자 했던 것도 같다. 
"당신 작가 아닌가요?" 가게 주인의 이 질문에 난 여전히 대꾸를 않고 있었다. 그해 봄, 인생살이가 어지간히 고되고 어디로 가야 할지 통 보이지 않던 때에, 네 또는 흐으음이라고 대답하기가, 심지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속을 밝히기가 멋쩍었떤 거지 싶다. 설사 대답했다더라도 실로 장황한 대답이 됐을 터다. 예컨대: "여성 작가가 문학적인 고찰 (혹은 숲속) 한가운데로 여성 등장인물을 진입시켰는데 이때 작가는 언어를 새로 발굴해 내야만 하는데, 그 스스로 망상이 아닌 주체가 되는 법을 배우는 과정, 그리고 애초 '사회 구조'가 그를 직조해낸 방식의 매듭을 풀어헤치는 과정과 관련된 언어일 수밖에 없어요. 이러한 과정을 시도할 때 작가는 몹시 신중하게 움직여야만 해요. 본인부터가 이미 여러 가지 망상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요. 실은 신묘하게 접근하는 게 가장 좋은지 몰라요.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에 더해 주체가 되는 법을 터득하기란 무척이나 어렵고 진 빠지는 일이랍니다."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이어 엮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고, 한편으론 이 모든 걸 (또다시) 고민하느라 내 인생을 1초도 더 허비하고 싶지 않은 절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난 이 생각들을 곧 내리 닥칠 파도처럼 공중에 붕 띄워 둔 채로 방기했고, 그러다 보니 중국인 가게 주인의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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